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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은이) · 소설/시/희곡 · 336p

발췌

외국인도 대단히 많았다. 물론 나도 외국인이었지만, 나보다 ‘더 외국인’이 잔뜩이랄까.

가로 백이십 센티미터, 세로 구십 센티미터의 미색 세계지도에는, 호주의 대산호초나 멕시코의 바키타돌고래처럼 위기에 처한 자연 유산과 동물들이 곳곳에 귀엽게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천연 염료를 사용한 친환경 면직물

그러나 자연을 위해서라면 사실은 굿즈를 소비하지 는 것이 좋다는 비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송희는 그룹이 아니라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하며, 그 바다와도 같은 커다란 사랑에는 정희정과 이저벨라 린, 박규영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복잡하다

백영록이라는 이름의 16세 소년이 사망한 사정에 대해, 군청 앞에서 행인에게 말을 거는 아주머니의 사정에 대해, 그 사정에서 나의 몫에 대해 무언가를 생각해내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

어쩌면 새들의 지저귐보다 시끄럽고 갓 구운 빵보다 뜨거우며 조카의 해맑은 웃음보다 슬픈 무엇. 스크린도어도 없던 시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1호선의 굉음. 열차를 일부러 떠나보내며 나누는 입술. 한강을 건너는 택시와 차창 밖의 쏜살같은 불빛들. 까맣게 꺼진 휴대전화 액정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식어버린 찻잔. 여지없이 비가 쏟아지면 뛰다가 걷다가 고가도로 아래에 서서 젖은 몸으로 스스로를 비웃기. 바보 같지만 가끔 되풀이하고 싶은 모든 소란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왜 사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부재를 느낄 수 있는지. 걔였는지 쟤였는지 이름과 얼굴은 지워졌어도 촉감과 온도와 음향, 아득한 형체로 남은 것들

전철역을 나서고도 집에 가지 않고 산책하는 날들. 노점에서 굽는 붕어빵 냄새.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의 발걸음. 전동 킥보드에 올라탄 여중생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니콜라이는 전년도 한국인 평균 이상을 벌어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으며, 그건 연봉 삼천팔백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진주는 마트에서 받는 월급에 열둘을 곱해봤다. 공무원 시험에 붙는다고 해도 금방은 어려운 돈이었다.

“한국인 엄청나네. 나도 못하겠네.”

라면 다섯 봉지와 계란 여섯 알, 조미김 한 팩과 인스턴트 건조 미역국을 주문하는 사람. 그것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비싼 캐나다산 개 사료를 한 번에 다섯 봉지씩 주문하는 사람. 오만이천원짜리 스페인산 올리브유 아홉 병을 한 번에 사는 사람은 무엇을 요리해서 먹는지, 십삼만구천원짜리 이탈리아산 소가죽 벨트를 쏜살배송으로 주문하는 사람의 생활은 어떤지 궁금했다. 진주 자신도 즉석밥이나 생수 따위를 종종 주문했는데, 그 점에 비춰보면 그들도 단지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일 거라고, 그래서 자기가 시급을 받고 시간을 팔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들은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할까. 마트에 와서 물건을 담는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 오직 그 물건들이 주는 행복의 알맹이만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 물건들을 사기 위해 자기처럼 또다른 누군가에게 시간을 팔고 있을까.

곽이 요즘 고등학생들은 수강 과목의 절반 이상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면 다들 신기해했다

어떡해 팬픽에서 느끼는 세대차이같음

왜 마르크스만 문제가 되나. 마르크스를 읽고 사회주의자가 되는 게 공자를 읽고 유교 원리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위험한가. 따지자면 추천 도서 중에서 카뮈의 『이방인』이 제일 위험하지 않나. 학생이 자기 어머니의 기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대낮의 태양에 눈이 부셔서 아랍인을 총으로 쏠지도 모르니까.

“여러분도 늘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았나요. 하교를 기다리고, 방학을 기다리고, 졸업과 합격을 기다리고, 성인이 되기를 기다리고…… 졸업하고 합격하고 성인이 되면 기다림은 끝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물론 그 말을 들은 학생은 은재를 비롯한 서너 명뿐이었다. 스무 명은 엎드려 자고, 다섯 명은 이어폰을 꽂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곽은 아무 제재도 하지 않았으며 모멸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듣지 않는 게, 혹은 어떠한 학교교육에도 참여하지 않는 게 부와 권력만을 추종하고 소수자를 배척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불량배로 성장할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노동 착취에 시달리며 형벌 같은 생존을 이어가지만 어떤 비판 의식도 벼릴 수 없는 죄수가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아무도 예단할 권리는 없었다. 학교에서 잘 배워야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믿음은, 제도교육에서 ‘모범적인’ 성취를 얻어서 삶의 기반을 마련한 자신 같은 교사들의 고정관념이었다.

곽은 자신이 알아본 은재의 역량을 대학에서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도, 진정 귀한 것은 지성 그 자체이며 그에 비하면 대학 합격증은 일종의 운전면허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후의 역사는 그녀에게만 달린 게 아니므로 질문을 수정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가 아니므로 당신의 하루를 모른다. 하지만 알고 싶다.

역도에 내려놓는 동작은 존재하지 않았다. 들었다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그대로 바닥에 버렸다.

송희는 들어보고 싶다기보다 버려보고 싶었다

거의 전부’는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거의 전부는 전부를 재촉한다.

이런 주문들의 총합이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면 ‘나는 잘 살고 있다’라는 주문이 유효해질까. 위에서 나열한 주문들은 나에게 대개 사실이 아니지만, 전부 사실이라면 충분한 걸까

이런 주문을 발견한다면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유가 무엇인지 의심할 필요도 없이 자유를 참칭하는 소음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것을 오르골의 자유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하나의 멜로디에 헌신하는 단순하고 평화로운 기계가 되고 싶었다.

누구도 누구를 치유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마음의 상호확증파괴다.

확실히 그렇네요.”

우리가 사는 세계, 즉 공공재/공유지commons는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모든 것에 값이 매겨지는 세계에서, 평범함은 얼마나 값싼 것이고, 때로는 얼마나 비싼 것인가

진실한’ 사랑은 어떠한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으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아무런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로 너무나 특별하고 희귀한 것이 된다. 모든 것이 계산과 경쟁의 대상이 되는 이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

진실한’ 사랑은 어떠한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으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아무런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로 너무나 특별하고 희귀한 것이 된다. 모든 것이 계산과 경쟁의 대상이 되는 이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진실한’ 사랑은 어떠한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으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

진실한’ 사랑은 어떠한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으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아무런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로 너무나 특별하고 희귀한 것이 된다. 모든 것이 계산과 경쟁의 대상이 되는 이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 문제의식 없이 만족할 수 없지만, 동시에 상황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권위주의를 경계하고 반성하기에, 자는 학생을 강제로 깨우는 등의 과단성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는 학생을 내버려두는 것은 교육 격차를 더 키우는 일이 아닐까? 곽은 이러한 모순과 딜레마까지 ‘메타적으로’ 인식하는 듯 보인다. 바로 이 메타성이 곽의 불행일 것이다. 그는 타협 없이 이상을 추구하기에는 너무 세속적이고, 그저 세속적인 계산만 하며 살기에는 너무 이상적이며, 자신의 이러한 이중성을 반성할 만큼 충분한 ‘메타 인지’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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