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복리처럼 쌓이는 사람들의 습관
발췌
상황이 순조로우면 바로 들떠서 ‘이게 원래 내 실력’이라고 잘난 체하면서 반대로 상황이 나빠지면 ‘이건 본래의 내가 낼 법한 결과가 아니’라며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황이 순조로울 때만 진정한 자신이라는 것은, 산에 정상만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당연히 산이란 정상만 있을 수 없다. 완만하게 경사진 들판과 계곡, 능선과 정상 등이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인생도 안 풀릴 때와 잘 풀릴 때가 있는 여러 번의 기복으로 완성된다.
지금 처한 입장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 판단하는 것이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 의견이나 원하는 바를 말하지 않으면 단순히 상대에게 맞추고 있을 뿐인 것이다.
실수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나는 승부를 하다가 실수를 저지를 때면 ‘큰일이다, 다 틀렸군’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흥미롭네’라는 식으로 실수 자체를 어느 정도 즐기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실수라는 상처가 벌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저지른 실수는 신경을 조금만 쓰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프로로서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실수이다.
“세면대에 얼굴을 넣고 마지막까지 고개를 들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라는 사쿠라이 씨의 말처럼 마작은 끈기와 의지가 없으면 계속할 수 없다.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작도 이를 악물고 연마해야 하며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는커녕 쌓이기만 한다. 진정한 마작에서는 그 괴로운 승부를 마지막까지 해내는 사람이 이긴다. 여유롭게 취미로 즐기고 싶다는 사람은 마작의 진검 승부와는 분명 맞지 않다. 마작은 인내를 요구하는 게임이므로 편하게 이기는 법만 노리면 승부의 흐름은 신기할 만큼 나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반드시’라는 사고 습관이 있으면, 고민도 필요 이상 깊어지고 지나친 강박에 사로잡히기 쉽다. 또한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껴서 끌어안고 있던 고민이 필요 이상 심각해지는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혹독한 국면을 맞았을 때 대자연의 그것에 비하면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받아들인다면, 역경은 적이 아니라 나를 강인하게 만들어줄 아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불순하고 불성실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일을 재미있는 놀이처럼 여기기 때문에 여유도 생기고 결과적으로 능률이 오르게 된다. 오로지 성실함만으로 일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유연한 발상이 나오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입장으로서 나의 인생을 오직 운에 맡길 수는 없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타인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의지 그리고 자존감과 마주해야 한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비난받아도 좌절하지 않는 강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노력하는 방향을 잘 잡으려면 목표로 하는 대상의 어디를 제압하면 될지 알아채는 승부 감각을 미리 길러둬야 한다. 옳은 방향을 잡은 후에는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성공할 확률은 반드시 높아질 것이다. 노력을 해야 하는 순간에 전력투구하지 않고 어중간하게 끝내면 죽을 때까지 후회를 떨쳐내지 못한다. 이루지 못한 꿈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도 그런 후회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인생에서 무엇보다 괴로운 건 후회를 남긴 채 일생을 마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노력한다고 해도 일이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노력은 이길 확률을 높여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옳은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해도 승률은 올라가지 않는다.
노력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그만큼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환경이나 주위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하자. 노력을 믿고 목표까지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그 시점에서 노력은 이미 과거의 것이며,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노력에 집착하는 사람은 두드러진 성과를 올리면 자신에게 도취되어 스스로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어버린다.
마작에서도 연달아 패배했을 때 돌변하여 난폭하게 두는 것을 폭패暴牌라고 하는데, 그러면 심리적 타격뿐만 아니라 점수 차이만 더 커지고 다음 대국 이후에도 이상하게 운이 따르지 않는다.
일을 소홀히 하여 업무에 지장을 가져오는 경우가 없더라도 일에 대한 자세에 성실함과 진지함이 결여되기 시작하면 그 느낌은 어떻게든 주변에 전해지는 법이다. 반면 어떠한 때에도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사소한 잡무에 대해서도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신뢰받는다.
집중’은 하나의 일에 얼마나 깊이 빠져들 수 있는가보다, 그 이외의 것에 얼마나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가를 요구한다. 정신을 분산시킬 만한 일을 엄격하게 잘라내는 능력의 차이가 곧 집중력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이너스를 만회하려고 할 때 저지르기 쉬운 ‘부정적인 집중’은, 비유하자면 일부러 운의 흐름을 악화시키려 노력하는 것과 같다. 이왕 집중을 한다면 흐름이 좋을 때 해야 한다.
마작 게임에서 크게 패하는 사람은 상황이 나쁜데도 계속하는 사람이다. 패배를 만회하는 것은 내일이나 일주일 후에 해도 상관없으니 일단 머리를 식히면 좋을 텐데 이런 사람은 열을 내며 조급하게도 바로 만회하고 싶어 한다.
악수로 성과를 거머쥔 사람은 ‘내가 이겼으니까’, ‘이만큼이나 되는 성과를 거두었으니까’ 하고 악수를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백히 나쁜 수임에도 좋은 수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순수’는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아는 것이다. 지식이나 겉치레 같은 장식을 걷어내고 본연의 모습을 갖추면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또한 자신의 길을 개척하여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를 빠뜨릴 수 없다.
사람은 생각하는 만큼 망설임도 깊어지기 때문에 감각을 갈고닦아서 느끼는 것을 삶의 기본으로 삼으면 목표를 달성할 기회는 늘어날 것이다. 또한 거시적인 관점이나 전체관全體觀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상대나 주위의 일도 생각하는 상대적인 감각을 넓혀감으로써 전체관은 형성된다. 자신의 일만 생각하는 부분관部分觀만으로는, 일시적으로 얻는 것이 많을 순 있어도 최종적으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지는 법이다.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대략이나 우선의 감각’을 가지고 큰 틀을 정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도중에 임기응변으로 거듭 목표를 수정하거나 방침을 전환하며 정밀도를 높여가면 된다. 처음의 큰 틀,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는 치밀한 계획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수치나 계산에만 의지해 단정 지으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이 ‘안다’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왠지 모르게’라는 대략적인 감각을 가지고 임하면 알 수 있지만, ‘절대’라는 감각으로 임하면 아는 데에 도달하지 못한다. 대략적으로나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유동적인 면에 의해 처음으로 ‘앎’에 대한 의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확실히’ 파악하려는 절대적인 의식은 과녁에서 빗나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대략, 왠지 모르게’라는 모호한 감각이 결과적으로는 대상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기전에 대비하려면 평소 의욕은 높지도 낮지도 않게, 적당히 유지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승부처가 왔을 때 기어를 바꾸고 단숨에 액셀 페달을 밟듯 의욕을 끌어올려 연달아 활을 쏘면 된다.
걷잡을 수 없이 패배하는 사람은 흐름이 나쁜데도 열을 내며 한 방에 역전을 노리다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또는 불안감 때문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어 열세에서 벗어날 계기를 잡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패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과 출세하는 사람은 모두 견디기 힘든 것을 견뎌내고 참기 힘든 것을 참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을 사전에 예상해두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리더는 ‘답은 있다’고 단언하는 수밖에 없다. 반드시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안심하라고 단언하며 자신만만하게 행동하는 것이 리더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답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답을 추구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은 틀림없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실행하는 ‘불언실행不言實行’은 멋은 있어 보이지만, 실패했을 때 창피를 당하지 않고 도망칠 길을 남겨놓는 태도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조직에 있어서는 자신을 몰아세워 회사 전체를 휘말리게 하지만,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해내는 ‘유언실행有言實行’ 쪽이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목표를 세우고 바로 실행하고자 할 때는 블로그 등에 글을 쓰거나 만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여 퇴로를 아예 차단하는 것이 낫다.
기회와 승부처는 전혀 다르다. 진정한 승부처는 위기 중의 위기,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일 때 찾아온다. 마작으로 말하자면 자기 외의 세 사람이 ‘리치’를 선언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틀을 만들면 자신도 모르게 그곳에 안주하고 만다. 따라서 만들어둔 틀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정해진 틀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가 그 사람의 성장 잠재력을 결정한다.
일이나 인생, 마작 등과 같이 사람의 심리가 개입하는 것에는 머리로 생각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망설임이 거듭된다면 그 판단은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직감이라는 것은 잡념이 들어가면 어긋난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승부처가 아닌데 초조한 마음에 얼른 승부를 걸고 싶다고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온다. 한편 상대에게 이기고 싶다든가 빨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잡념을 덜어낸 후에 나온 직감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
스트레스 사회의 원인은 애써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데에 있다. 그에 비해 감각은 폐해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정신력 싸움이기도 한 마작에서는 규칙이 감정을 배제하고 단호하게 단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욕망의 대상을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는 것이 힘을 빼는 비법이다.
욕망이 지나치게 크면 때때로 욕망 그 자체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 상태가 이어지면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목표나 소망하는 대상에 도달하기 전에 좌절이나 실패를 거듭하게 되며 일도 잘 풀리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공을 세우기에 급급한 사람은 결국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불순한 동기로 일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크게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 고마워요 할배
하지만 아무런 보장도 확증도 없었기에 내딛는 걸음마다 두근거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 궁금한 점. 이 사람이 능력적으로 뛰어나서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아니고?